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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Review

노숙인과의 인터뷰(였나?)

창조의흔적 2013. 11. 9. 01:06

추위와 연말이 시나브로 찾아온 느낌이다. 피곤함에 절은 몸이 자연스레 움츠러드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11월을 느끼게 한다. 오늘 만난 노숙인도 나와 같은 모습이다. 주변을 살피고, 두리번거리는 게 분명 노숙인이다. 바람만 겨우 피할 수 있는 강변 CGV 영화관 벤치에 누가 보든 상관없이 눕는 모습이 익숙해 보인다. 바닥이 차가울까 걱정하지만, 추위를 피해 몸만 누일 수 있다면 그런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덩치 큰 하인을 두었다. 마님이라 부르는 남성이 극구 만류해도 자리를 깔고 눕는 강단엔 소용이 없다. 노숙인이 하인을 부리다니. 분명 무엇인가 있는 사람이다. 그것도 다른 이의 눈 따위 의식하지 않는 여성. 가까이 가보니 술 냄새도 나지 않는다. 멀쩡한 정신에 자연스럽게 영화관에서 누울 수 있다니. 노숙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대화는 노숙인을 마님으로 모시는 하인과 나누었다. 





- 마님은 노숙인이 맞는가?

아니다. 원래 침대에 양털이나 100% 코튼 제품을 깔지 않으면 절대 눕지 않는 분이다. 다만 평소에 침대 중독자로 집안에서 유명한 게으름뱅이다.

- 자연스러운 자태에 넋을 잃었다. 

아름다운 자태에 노숙인 포스가 더해져 지나가던 사람들이 전부 쳐다본다. 노숙인으로 살아도 충분할 역량을 지녔다고 자부한다. 원래 성경에 나온 예수의 모습을 따라 머리 둘 곳 없는 삶을 동경해 왔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분이다.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모두 갖췄다.

- 평소 건실한 삶을 사는 것 같은데 오늘은 무슨 일인가?

영화 '그래비티'를 보러 나오셨다. 오랜만에 나온 강변 CGV에 들뜨신 것 같다. 다짜고짜 이곳 벤치를 아름답게 하라는 사명감을 느낀 것 같다. 이런 모습에도 아름다울 수 있는 분은 우리 마님뿐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CGV에서도 이곳을 영구히 보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이런 노숙인 콘셉트로 어딘가를 보존해야 한다는 다음 목표가 있나.

지금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잠실역과 롯데월드를 노숙인 콘셉트로 곧 접수할 계획은 하는 것 같다. 어쩌면 마님이 사랑하는 다른 여성 친구들과 함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태흔 보고 있나?)

- 계획이 잘 이뤄져 아름다운 노숙 문화를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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