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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Review

문화를 향유하는 그리스도인, 팟캐스트 '박샘의 위대한 수다'

창조의흔적 2013. 5. 9. 23:10

문화 해석으로 풍선한 그리스도인의 삶 만드는

문화 향유와 해석 네트워크 에디공

 

기독교에서도 팟캐스트가 대세다. 교회들도 팟캐스트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설교만 올라온다는 것이랄까. 그래서 문화를 다루는 에디공의 박샘의 위대한 수다를 접하고 매우 반가웠다.


방송을 듣고 기독교인의 삶과 영화 내용을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다룬 방송은 비기독교인도 듣고, 격려와 감사의 편지를 보낼 정도로 내용이 알찼다. 어떤 사람들이 만들까? 서울 용산구에 있는 에디공을 방문해 그들을 만나보았다.


 

해가 길어졌다. 7시인데도 아직 밝으니 말이다. 햇살을 뒤로하고, 신용산역 근처 좁은 골목에 있는 한 집의 뻑뻑한 문을 열었다. 실내는 좁지만 복층으로 이뤄졌다. 디딜 때마다 발이 아플 정도로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니 작은 다락방에 팟캐스트를 만드는 패널들이 모여 있었다녹음 전,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다시 점검하고 오늘 다룰 내용을 미리 이야기하며 방송 리허설이 한창이다. 기본 내용이 담긴 대본에는 새로 추가하고, 재미있게 담을 내용이 가득하다.


녹음실은 발 아픈 계단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 발이 크고 두꺼운 기자에게는 무척 불리한 계단이었다. 그런데 녹음실은 더욱 불리했다. 낮은 천장에 네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좁은 방이다. 책상에는 간단한 믹서와 녹음용 노트북이 놓여 있다. 멋들어진 마이크까지 있는 걸 보니 제법 녹음실 같아 보였다이런 곳에 매주 모여 기독교인들을 위한 문화 해석 프로그램을 만드는 에디공 회원들. 문화 활동을 너무 좋아해서 심지어 전공을 바꾼 사람들까지 있으니 문화에 남다른 열정이 있는 건 분명하다.

 

기독교 원년, 그 직전을 기억하며


에디공은 원래 문화발전소 에이디제로에서 시작했다. 에이디는 우리가 기원전과 후로 나누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AD. ADAD 1년에서 시작하기에 원래 AD 0년은 없는 표현이다. 하지만 에디공은 예수가 이 땅에 오기 바로 직전에 느꼈을 이 땅의 긴장감과 교회의 건강함을 생각하며 단체 이름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회원들이 이름을 줄여 에디공이라고 불렀고, 문화를 창작해 내던 단체의 방향이 바뀌면서 이름도 바꾸었다. 그때 단체를 수식하는 말도 문화발전소에서 문화 향유와 해석 네트워크로 함께 변경했다


문화발전소로 있을 때는 예술가들과 함께 전시회도 열고, 잡지도 발행했다. 하지만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박준용 교수의 강의를 듣고 모인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해석 공동체 성격이 강해졌다.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 해석 공동체로 방향을 정했다.


박준용 교수는 총신대 신학과 출신이다. 연극과 문화 공연에 관심이 많아 졸업 후,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학사 편입했다. 졸업 후, 이론의 토대를 더 쌓기 위해 공연예술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공부했다. 온누리교회 청년부 시절에는 문화부 부장까지 맡아 섬길 정도로 문화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현재 팟캐스트 PD로 활동하는 정재원 PD도 총신대 신학과를 졸업했다. 신학생 시절 기독교 포털인 호산나넷에서 문화 해석 카페에 가입해 박준용 교수를 처음 만났다. 영화나 삶에서 만나는 병리적 캐릭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신학과 졸업 후, 중앙대 문화연구학과로 진학해 정신분석학을 공부했다.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는 논문을 쓰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교회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너무 좁은 것은 아닐까 늘 궁금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삶을 바라보는 식견이나 태도가 확장되기를 바라며 열심히 공부했다. 지금 만드는 팟캐스트는 그런 배움과 나눔의 연장선에 있다.


 

문화 해석 통한 향유가 중요하다


기독교에서 문화를 향유한다는 표현은 참 조심스럽다. 한편에서는 문화를 주의하고 조심해야 할 부분으로 여겨 적대시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엄청나게 문화에 노출된 상황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문화가 우리에게 독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에 대해 박준용 교수는 이런 상황을 두고 해석이 중요한 때라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걱정한다. 소비 차원으로 문화를 보고 듣고 즐기기 때문인데, 소비는 먹고 배설하는 의미가 강하다. 문화를 소비하다 보면 나쁜 영향력까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하지만 향유는 누린다는 의미다. 누린다는 것은 잘 즐긴다는 의미다. , 향유하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면 똑같이 영화를 보고도 재미있다, 없다를 넘어 영화의 여러 의미를 풍요롭게 즐길 수 있다. 문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누림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체에 익숙해져야 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힘이 생겨야 한다. 이런 힘은 결국 해석에서 나온다. 해석은 우리가 어떤 문화를 만나서 느끼는 찜찜함을 해결해 주고,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한다. 그래서 박준용 교수는 해석은 해독이다라고 강조한다.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는 찜찜한 기분은 독과 같다. 해석을 통해 좋은 의미와 경계해야 할 부분을 충분히 생각하면, 찜찜함이 해결되고 해독된다. 그런 의미에서 해석은 해독이고, 힐링이다."

 

예술과 삶을 이어주는 팟캐스트


우리는 문화와 예술, 일상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과연 삶·일상과 분리된 문화와 예술이 존재할까. 심지어 전위 예술이나 난해한 예술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그의 작품은 모두 자신의 삶과 이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예술은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새로운 전달 방식이고, 의미를 부여한 누군가의 노력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예술을 해석하려면 배울 게 무척 많다. 좋은 안내자도 필요하다. 어쩌면 대중이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까닭은 해석자가 필요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와 대중예술은 소비 개념으로 이어지기에 우리에게 독이 되어 돌아온다.


소비 형태에서 벗어난 문화 해석을 위한 접점이 필요하다. 너무 예술적이지도 않지만, 대중문화에 가까운 상징성을 많이 포함한 작품들, 논란의 여지가 있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들 말이다. ‘위대한 수다는 이런 문화를 향유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방송이다.


"에디공은 그동안 세미나를 많이 했다. 사람들이 특정 공간에 모여서 하는 활동은 지역적이고 시간적인 한계가 있었다. 직장인들은 참석하기도 어렵다. 그런 고민을 할 때 팟캐스트가 등장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팟캐스트에 담아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오게 하는 것이 아닌 보내는 서비스로 문화 사역을 해보면 어떨지 고민했다."


프로그램 제작자 정재원 PD의 설명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동안 다룬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기독교계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레미제라블>로 시작해,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그리스·로마 신화의 고전인 <오이디푸스 왕> 등 그동안 교회에서는 보기 어려운 주제들이 많았다. 내용을 들어보면 너무 자연스럽게 교회, 신앙, 우리의 삶과 이어지며 새로운 시각을 준다.


박준용 교수는 이런 영화나 고전에서 다루는 내용이 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 우리도 같이 이야기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에 나오는 주제나 소재, 관계를 이야기로 다룬다. 만약 우리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라고 누군가 우리에게 질문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그 작품을 많은 사람이 접했든 접하지 않았든 중요하지 않다. 보편적인 이야기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고민과 갈등이 없다면 우리가 다룰 필요가 없다."



미리엘 신부 이야기를 아는가


'영화 <레미제라블>에 미리엘 신부가 나온다. 장발장이 은식기를 들고 도망가다 잡혔을 때, 그를 보호해 주어 장발장을 변하게 한 인물이다. 영화나 뮤지컬에서 출연 분량은 적지만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데 빅토르 위고의 원작에서는 책의 1/4이 미리엘 신부 이야기다. 분량 면에서도 방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인물인 것이다.


잘 살펴보면 장발장의 신앙 여정이 신부의 변화 여정과 일치한다. 신부의 삶은 장발장 이야기의 프롤로그 같다. 신부의 모습은 자베르 경감까지 품는 장발장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미리엘 신부는 신사적이고 귀족적인 풍모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 그도 다른 신부를 통해 인생이 변화한다. 결국 장발장까지 품는 사람이 되지, 그런 그에게도 젊은 날을 추억하며 버리지 못하는 마지막 상징이 있다. 그게 바로 은촛대였다.


장발장은 낯선 이방인을 환대하는 신부 때문에 변화한다. 그것도 자기 존재의 가장 중요한 상징인 은식기와 은촛대를 나눔으로 보여줬다. 그곳에 음식을 대접했고, 접근이 용이한 자리에 잠자리를 준다. 신부는 이미 그것을 장발장에게 신뢰함으로 내어준 것이다. 그래서 장발장이 다시 잡혀 왔을 때, 왜 은촛대는 두고 갔는지 물어본다.


신부의 삶을 읽은 사람이 보기에는 그 말은 임기응변이 아니다. 그래서 은촛대와 은식기로 당신의 영혼을 샀다고 말하는 부분은 큰 감동을 준다. 그냥 교회에 있던 물건을 내어준 게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내어준 까닭이다. 사람은 말로 변하지 않는다. 내어줌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을 통해 이뤄진다. 교회에 그런 사람이 많다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레미제라블> 편에 나오는 내용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고전과 영화, 그리고 사람과 교회 등을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는 문화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내용을 나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방송을 직접 듣고, 향유하면 좋을 것 같다.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다


앞으로 위대한 수다의 목표는 양극단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그동안 기독교 내에서는 해도 된다와 안 된다로만 판단하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이유도 모른 채 강요된 이분법적 대화에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들은 그냥 하면 어때라고 말하며 떠난다. 위대한 수다는 이들과 대화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교회의 기성세대와 청년들이 점차 양극단으로 갈리고 있는데, 균형점을 찾고자 한다. 그래서 그런 주제를 조금 더 다룰 예정이다. 마냥 해도 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무엇이 잘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고 싶다. 패널들도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질문하면서 서로 답을 찾아가려고 한다. 그 주제에 대해 섬세하게 고민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


지난 기사 포트폴리오로 올립니다. 

월간 <빛과소금> 5월 호에 기고한 기사입니다. 

사진 저작권은 전부 <빛과소금>에 있습니다.

http://www.duranno.com/sl